나는 빈민가에서 태어났다.
어릴적 부터 가난이 너무나 싫었지만 도망치고 또 도망쳐도 결국 가난은 나를 잡아먹었다.
나의 아버지는 알콜중독자였다.
아버지가 술을 마시면 나는 너무 두려웠다.
형은 마약중독자였다. 형은 약에 취해 삶에 의욕도 없었다.
가난한 우리 가족을 먹여 살리는 것은 청소부 일을 하는 우리 어머니였다.
청소부 일을 하는 어머니가 난 너무 부끄러웠다.
어느날 빈민가 놀이터에서 혼자 흙장난을 치던 나에게 보인 것은 저 멀리서 축구를 하는 동네 친구들이였다.
내가 가난하다는 이유로 나를 축구에 껴주지는 않았지만 원망하지는 않았다.
우연히 날아온 축구공을 찼을 때 난 처음으로 희열이란 것을 느꼈다.
“어머니 저도 축구가 하고 싶어요. 축구팀에 보내주세요”
철 없는 아들의 부탁에 어머니는 당황했다.
자신들의 형편으로는 비싼 축구비용을 감당하는 것은 불가능 한 것이기에.
그렇지만 어머니는 아들의 꿈을 무시할 수 없었고 나와 함께 이곳 저곳 팀을 알아봐 주셨다.
겨우 저렴한 가격에 팀에 들어 올 수 있었던 나는 가난하다는 이유로 패스 한번 받지 못하고 조명이 꺼지고 모두가 돌아간 뒤에는 혼자 남아 축구공을 닦아야 했다.
낡은 축구화를 수선하며 축구를 하던 나는 하늘이 무너지는 소리를 듣게 되었다.
난 어릴적 부터 정상인 보다 두배는 빠르게 심장이 뛰는 질병이 있었는데 이 것 때문에 앞으로 운동선수를 할 수 없다는 소리를 듣게 되었다.
다행이 수술을 하고 재활치료를 하면 정상인 만큼은 아니지만 그래도 많이 호전 될 수 있다고 들었다.
하지만 우리집은 가난하였다.
값비싼 수술비를 지불 할 수 없었다.
나의 소식을 들은 아버지와 형은 나의 수술비용을 마련하기 위해 취직을 하였고 마침내 일년 후 온 가족이 모은 돈으로 수술을 할 수 있게 되었다.
수술은 성공적이였다.
재활을 마친 후 나는 더욱 더 훈련에 강도를 높였다.
비록 동료들에게 패스를 받지 못 하면 어떤가. 나는 행복했다.
시간이 흘러 난 꿈에 그리던 그라운드에 데뷔하였다.
수 많은 관중, 서포터즈, 스포츠 기자들, 그리고 유명 축구팀 스카우터들. 내가 바라고 바랬던 축구장.
난 이 무대에서 죽을 각오로 뛰고 또 뛰었다.
“심장이 터져도 좋다.” 그렇게 나의 데뷔전이 끝났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전화 한 통화를 받았다.
자신은 다른 리그 축구팀 감독이라고 한다. 그는 나를 이적시키고 싶다고 했다.
그의 말을 듣고 나는 몸에 소름이 돋았다. 아니 전율이였다.
그 곳은 세계 최고의 구단 중 하나인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나에게 직접 전화를 건 것은 최고의 축구 감독이라 평가 받는 퍼거슨 감독이였다.
전화가 끝난 후 나는 바로 어머니에게 전화를 걸었다.
눈물이 나고 말도 잘 나오지 않았다.
흐느끼며 난 어머니에게 이렇게 말했다.
“어머니 더 이상 청소부 일을 하지 않으셔도 되요”
어머니는 아무 말씀 없이 수화기를 잡고 울고 있으셨다.
구멍난 축구화에 외톨이, 심장병을 가진 소년이였던 나는 그렇게 ‘크리스티아누 호날두‘가 되었다.